도토리 다락방
19년 6, 7월의 영화 본문
《메리다와 마법의 숲 (Brave, 2012)》
한국으로 들어올 때 로컬라이징한 제목이 정말 굉장한 미스였다고 생각하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보았다. Brave, 라는 제목이 정말 딱이었는데 약간 아쉽다는 느낌. 사실 처음 본 것은 아니고, 작년에 이미 보았고 얄금얄금 간간이 보다가 이번에 또 보는 겸하여 본 것.
I will hear their every story
나는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거야
Take hold of my own dream
나의 꿈을 놓치지 않고,
Be as strong as the seas are stormy
폭풍우치는 바다만큼 강하게,
and proud as an eagle's scream
독수리의 외침처럼 당당하게!
한참 이게 개봉할 당시에, "좀 별로더라" 하는 소문만 듣고 그렇구나~ 했는데. 정말 왜 그랬을까? 도대체 어디를 보고 그런 감상을 내렸던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만큼, 멋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지금 알게된 사실인데, 공동 감독이 여자였다. 어쩐지 그런 것 같았다.....^^
[줄거리]
주인공 '메리다'는 왕국의 공주. 드레스와 구두보단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걸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다. 하지만 어머니 '엘레노어'는 그런 메리다가 아름다운 공주가 되어 신부수업도 받고, 결혼도 했으면 한다. 이 극과 극을 달리는 성향 탓에 사사건건 부딪히는 메리다와 엘레노어. 어느날 메리다는 이런 고지식한 어머니를 바꾸기 위해 마녀를 찾아가게 되는데.....
[감상]
이전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사실인데, 이제보니 영화에서 의견이 부딪히는 메리다와 어머니는 마치 세대간 여성성에 의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활을 쏘고, 자유분방하게 말을 타는 것 자체가 어머니 엘레노어가 바라는 여성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신부수업을 받고 단아하게 신랑 찾아 결혼하면 될텐데, 활과 말이라니 이게 웬 건가? 이런 엘레노어 때문인지 메리다는 영화에서 자주 분노한다. "내버려둬요, 이런 거 하게 냅두란 말이에요!" 어쩌면 모 네티즌의 의견처럼, 철없고 반항만 하는 큰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머니의 세대와 딸인 메리다의 세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안다면, 주인공 메리다가 그런 철부지로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윗세대의 전통만 고수하기엔 시간이 이미 흐르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왕국, 왕국의 신화, 그리고 마녀, 도깨비불 등등은. 그저 이들의 가치관에 의한 대립을 보여주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어머니가 딸을 이해하고, 딸이 어머니를 이해하여 이들이 화해함으로써 판에 박힌 가치관이 부서지는 게 주 흐름이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볼륨에 비해 너무 시시하게 끝난다, 라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단 말이다(ㅠㅠ)
개인적으로 노래도 배경도 꽤 좋아해서, 사운드트랙 같은 경우는 음원을 구매했다.
과거의 디즈니 프린세스는 대개들 왕자와의 사랑을 찾고, 결혼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면.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나온 시점인 2012년을 기점으로 점점 디즈니 영화의 주 흐름이 바뀐 느낌. 실제로 《겨울왕국(Frozen)》도 다음에 나왔다. 메리다 이후에 나오게 된, 디즈니 프린세스가 나오는 영화가 《겨울왕국(Frozen, 2012)》, 《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 2012)》, 《모아나 (Moana, 2016)》등인 걸 생각하면..... 공주가 나오는 영화를 만드는 디즈니로서는 《메리다와 마법의 숲(Brave)》이 꽤 큰 모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결말도, 새로운 바람이 부는 시대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귀엽고, 말끔하고, 사운드가 좋았던 영화. 활을 쏘고 기존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겠다는 공주를 좋아한다면, 이 작품을 보아도 좋다.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1988)》
2019년 8월 31일 현재 스트리밍 사이트 《왓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Love Theme」
블로그 시절, 한참 오르골 음악 따위를 bgm으로 해놓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때 시네마 천국의 ost를 처음 들었다. 멜로디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 그 음악을 브금으로 설정해놓고 하루종일 반복재생 해놓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영화의 음악이 익숙하게 일상 속에 녹아들게 되면, 어느 순간부턴 '이런 멋진 음악이 나왔던 원작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게 된다. 히사이시 조, 「Summer」가 나왔던 영화 원작인 《기쿠지로의 여름》을 그래도 한 번은 들춰보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기쿠지로의 여름은 좀 망작이었다 음악만 듣자.)
[줄거리]
《시네마 천국》의 배경은 시골 마을의 작은 영화관이다. 그곳에서 일을 하는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그의 어린 친구 '토토'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 흐름이다. 토토는 아주 어릴 적부터 영화를 사랑하고, 많은 영화를 보고, 또 영사기사인 알프레도 옆에서 알짱거리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가게 된다. 이런, 영화를 사랑하는 인물들이 겪어나가는 과정을 영화사와 함께 잔잔하게 푼 작품.
[감상]
유명한 영화는 이유가 있다, 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시네마 천국》의 배경상, 어린 토토가 자라나며 영화 산업의 판도 바뀌게 된다. 아주 낡은 영사기를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부턴 다른 멋진 기계가 들어온다던가 한다는 것 말이다. 그 모양을 보고 있자니 이전에 보았던 《휴고 (HUGO, 2011)》가 생각났다. 《휴고》에서도 주인공 아이와 함께 영화산업의 시작과 판도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등장했는데, 어쩌면 휴고 제작진이, 시네마 천국을 보고 약간의 오마쥬를 한 걸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재미있었던 것. 친근한 ost가 많이 나왔다. 이 영화를 영상 관련 과를 나온 친구A와 함께 보았는데, 어떠한 음악이 나올 때마다 A가 "이 음악 유명하지!" 라고 했었다. 아주 친숙하고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의 기원이, 실은 이 영화에서 나온 것이었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시네마 천국》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자 가장 유명한 음악인 「Love Theme」가 나올 즈음엔 A와 함께 "진짜 유명한 이유가 있네" 라고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내가 겪어보지도 못했던 흑백 영화의 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주인공 토토와 함께 걸어온 뒤 회상을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음악의 힘이 너무 대단해서, 마치 그 시대를 겪은 것마냥.... 기억 조작이 굉장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작품이 아닐까. 나는 영화를 그리 대단하게까진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이걸 보고나니 주인공 토토마냥, 영화에 더 멋진 감정을 품게 되는 것 같다. 《휴고》를 재밌게 보았거나, 영화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즐거이 볼 수 있을만한 작품.
《토이스토리 4 (Toy Story 4, 2019)》
토이스토리 시리즈를 전편 정주행한 뒤, 곧장 4번째 이야기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완벽하게 매듭지어진 이야기를 흥행성, 그리고 돈벌이라는 명목 하에 분명히 망칠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디즈니와 픽사를 무척 비판했었고, 우려 끝에 나온 《토이스토리 4》를 보러간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랬다. "내가 틀렸어. 얘네가 옳았다."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하면서 이번에 친구와 보러 갔었는데 나 역시 "그들이 옳았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1, 2, 3을 보지 않은 사람에겐 전개 자체가 모두 스포일러이므로, 줄거리는 제외한 채 감상만 작성한다.
덤으로 기술의 발전도 눈부셨다. 근래에 《몬스터 주식회사》와 《토이스토리 1》을 봤는데, 아주아주 어릴 적의 기억과는 달리 그래픽이 상당히 후졌었다. 자세히 뜯어보니 특히 토이스토리1은 폴리곤이 너무나도 선명했고(진짜로), 몬스터 주식회사는 미묘하게 덜 다듬어진 오브젝트 특유의 반질반질한 느낌이 살아있었다. 그 이후로 약 10년가량이 지난 그래픽은……. 참으로 놀라웠다. 토이스토리4 초반에 나오는 비 내리는 장면에서 살아있는 물의 질감과 빛, 그리고 정밀성......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픽에 대해 감탄만을 했다. 모 트친분이 토이스토리4를 보고 3d를 하는 입장에서 크나큰 절망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게 무척이나 공감가는 영상미였다.............. 저세상 신을 소환한 게 분명하다. 질감이 이렇게나 살아있는 영상을 살아서 보게 되다니, 싶은 느낌.
또 멋있었던 점이라면, 엔딩 크레딧이다. 최근엔 엔딩 크레딧까지 꼬박꼬박 보고 나오는데, 이 영화에선 신기하게도 크레딧에 인턴의 이름이 등장한다. 몇년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반짝 일하다가 반짝 가는 인턴 말이다! 보통 굳이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자료 서치한 사람의 이름, 그리고 감동적이게도, Production baby 1라고 해서 제작기간동안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도 나온다. 직업 세분화도 꼼꼼하게 잘 되어있고, 아주 사소한 일을 한 사람들의 이름까지 적어놓아서 그런지 사람을 아끼는 회사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복지도, 섬세함도 탁월한 회사구나!' 싶은.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를 보면서 흑흑 이건 사야돼, 싶었는데 토이스토리 시리즈도 dvd를 위시에 올려두었다.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이, 이 멋진 장난감들의 모험을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나름 근근이 영화 보면서 감상문 쓰며 올해 1달 3편 감상문 목표 지키나 싶었는데, 이렇게 엇나가게 되는군요! 하지만 결국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쓴다'의 본 목적은 결국 거의 습관으로 자리잡은 듯하니 아무렴 뿌듯한 기분입니다. 이번 한 달도 모두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쾌적한 여름 되시길 바랄게요!
-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작품의 제작기간이 길 경우 이 기간 중에 태어난 아이들을 일컫는 크레딧 용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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