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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7월의 책 본문

책을 읽었어요

19년 7월의 책

치치케 2019. 8. 15. 16:52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허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8. (오디오북)



  방학에 일정이 생겨 여유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도 책이라는 형태의 무언가가 보고 싶었어! 다른 건 싫다! 끝끝내 찾은 방법은 오디오북. 굳이 돈을 들여서 텍스트로 존재하지도 않는 걸 사야돼? 하는 과거의 나를 꽤 혼내주고 싶을 정도로, 생각보다 정말 좋았다. 비싼 오디오북은 뮤지컬, 연극 배우 같은 목소리 연기가 잘 되는 사람과 더불어, 섬세한 배경음이 깔렸기 때문.


  하지만 만약 과거의 나에게 한마디 해주자면, "제발 이 책을 보지마라"이다. 2019년에 읽을만한 문학은 전혀 아닌 것 같다. 여기저기 다 말하고 다닌 사실이지만, 이 작가와 내가 만일 동시대를 살았더라면 기어코 그의 절필과 단명을 수백번은 기원했을 것이다. 간략한 줄거리라면, [순수하고 여린 심성의 젊은이가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견디지 못하고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이라고 네이버 책소개에 나와있다.


  주인공 '요조'는 부잣집의 도련님으로,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게 공감하기 힘든 인물이다. 도무지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인간군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감정을 요조에게서는 찾기 힘들다. 요조는 그것을 어릴 때부터 민감하게 느끼고, 점점 나 자신과 다른 인간들을 분리하게 된다. 다소 동떨어지고 현실감 없는 아이로 자라는 것이다. 다만, 이걸 나타내는 방법이 종래엔 "술, 담배, ……그리고 여자" 따위로 표현되며, 중간중간 "여자들은 정말 다르다"같은 식으로 나온다. 솔직히 2019년에……. 비위 상하는 소설이다.


  비위가 이렇게까지 상한 이유를 표현하자면, 이 작품에서의 인간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남자, 남자이다. 여자는 오로지 인간으로 표현되는 주인공과 남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세계의 무언가이거나, 매춘부, 혹은 지극히 순수한 것으로만 표현될 뿐이다. 딱, '남자의 눈으로 바라본 여자들'이 나올 뿐. 이 소설을 듣고 있노라면, 당시는 얼마나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었는지 알 수 있다

  주인공 요조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과정은 알겠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것들 때문에 도무지가 그에게 공감과 연민이 가지 않았다. 대관절 굳이 매춘하는 섹시스트에게 공감까지 해야겠냐! 싶은 느낌. 그래도 나름 고전명작이니까 이해를 좀 해야겠지 싶으면 그 때마다 영 이상한 표현들이 마구마구 등장했다. 나중에는 제발 이 책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혼 없이 들었다.



  결국은 한심한 결말이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의도한 인간실격이라는 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등의 우아한 표현이 아니라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며 세상찌질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다면 이 작품은 대성공이다. 나는 타인과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고, 그런 내가 너무나도 가엾고 측은하여 술과 매춘, 담배에 손을 뻗으며 자기연민에 한껏 빠진 사람을 굳이 2019년에 들춰보고 싶다면, 굳이 그래야 하겠다면……. 추천한다.


이렇게 고전을 쓴 남자 작가들에게 또 하나의 편견어린 막을 덧씌운채, 다음부터는 필히 여자 작가의 소설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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